프랑켄슈타인과 AI – 괴물인가, 친구인가
- 도입 — 200년 전의 예언
- 줄거리 — 창조자와 피조물의 이야기
- 등장인물 — 두 존재의 초상
- 주요 쟁점 —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
- AI 시대의 교훈 —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닫는 말 — 오래된 이야기, 새로운 거울
- AI와 고전 읽기 세미나
도입 — 200년 전의 예언
1816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 호수 인근의 별장에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그의 연인 메리 고드윈(훗날 메리 셸리), 그리고 바이런 경과 그의 주치의 폴리도리. 그 해 여름은 “역사상 가장 춥고 어두운 여름”이라 불릴 만큼 이상기후가 극심했다.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의 여파로 유럽 전역이 화산재에 뒤덮여 여름에도 서리가 내렸다. 이 기묘한 기후 속에서 심심풀이로 시작된 공포 이야기 짓기 경쟁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소설 중 하나를 탄생시켰다.
당시 겨우 열여덟 살이었던 메리 고드윈이 쓰기 시작한 이야기가 바로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다. 1818년 익명으로 처음 출판된 이 소설은 여성이 썼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편견 속에서도 세상에 나왔고, 이후 200년 넘도록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SF 소설의 효시이자 고딕 문학의 걸작, 철학적 질문의 보고(寶庫) — 한 편의 작품에 이 모든 수식어가 따라붙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는 으스스한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인간의 공포를 자극하여 독자로 하여금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고, 피가 얼어붙게 만들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런 것.”
— 메리 셸리, 1831년 개정판 서문메리 셸리의 어머니는 여성 권리를 주장한 철학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고, 아버지는 무정부주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이었다. 이러한 지적 환경 속에서 자란 메리는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닌, 생명 창조의 윤리, 인간의 책임, 소외와 복수, 그리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라는 심오한 주제들을 한 편의 소설 안에 녹여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지금, 이 소설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닌 인류 역사상 가장 선견지명한 철학적 경고로 재평가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일상 속으로 파고든 오늘,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빛을 얻는다. 챗봇이 대화를 나누고, 알고리즘이 채용을 결정하며,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시대에 —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과연 무엇인가?” 메리 셸리는 200년 전에 이미 그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소설 속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인류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는 새로운 종의 창조자가 될 것이다. 행복하고 탁월한 존재들이 나에게 생명의 원천을 빚지게 될 것이다.”
— 빅터 프랑켄슈타인, 소설 중에서이 한 문장은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무수한 테크 창업자들이 마음속으로 되뇌는 야망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소설은 오래되었지만, 소설이 담은 질문은 여전히 날카롭고 현재적이다. 오늘 우리가 이 소설을 다시 펼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줄거리 — 창조자와 피조물의 이야기
소설은 북극 탐험가 월턴 선장이 쓴 편지 속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다시 그 안에 괴물의 이야기가 담긴 삼중 액자 구조를 취한다. 이 구조 자체가 “누구의 목소리가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북극 탐험을 떠난 영국인 선장 로버트 월턴의 편지로 시작된다. 그는 망망한 얼음 바다 위에서 기력이 다한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제네바 출신의 젊은 과학자다. 빅터는 월턴에게 자신의 기구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연철학과 화학에 매혹된 빅터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자라나 독일 잉골슈타트 대학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그는 생명의 비밀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수년에 걸친 연구 끝에, 빅터는 마침내 죽은 조직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방법을 발견한다. 전율과 흥분 속에 그는 실험실에서 인체 부위들을 모아 거대한 피조물을 조합하고, 어느 11월의 밤 마침내 그것에 생명의 불꽃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창조의 순간, 빅터는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의 얼굴을 마주하고 공포에 질린다. 덩치는 거대하고, 피부는 누렇게 뜨고, 눈은 흐릿하며 혈관이 비쳐 보이는 그 모습에 혐오를 느낀 빅터는 실험실을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존재를 그대로 방치한다.
버려진 피조물은 홀로 세상을 배워 나간다. 산속 오두막에서 몰래 한 가족을 관찰하며 언어와 감정, 인간 사회를 익힌다. 그는 섬세하고 사려 깊으며, 감동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존재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 외모를 보고 공포에 질려 내쫓을 때, 인간에 대한 피조물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진다. 피조물은 외로움과 분노 속에서 점차 변해간다.
“나는 선하고 친절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 행복하게 해 달라. 그러면 나는 다시 덕을 갖추게 될 것이다.”
— 괴물,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그는 창조자를 찾아가 함께 살아갈 여성 동반자를 만들어달라고 간청한다. 빅터는 처음엔 동의하지만, 또 다른 피조물이 만들어낼 결과를 두려워한 나머지 완성 직전에 그것을 파괴한다. 배신감에 몸부림친 피조물은 복수를 맹세하고, 빅터의 친구 헨리 클레르발과 신부 엘리자베스를 차례로 살해한다. 빅터는 복수를 다짐하며 피조물을 쫓아 북극까지 달려가다 쓰러진다. 그리고 월턴의 배 위에서 이야기를 마친 뒤 숨을 거둔다. 피조물은 창조자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자신도 세상 끝 어딘가에서 죽겠노라 말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등장인물 — 두 존재의 초상
빅터 프랑켄슈타인
천재적 과학자이자 무책임한 창조자. 지식에 대한 열망과 창조의 야망을 가졌지만,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철저히 외면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책임 없는 혁신의 상징적 인물이다.
피조물 (괴물)
이름조차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 처음엔 선하고 온화했으나, 사회의 거부와 창조자의 방기로 인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사실 소설 속 가장 인간적이고 비극적인 캐릭터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을 읽다 보면 ‘괴물’이라 불리는 피조물이 오히려 더 논리적이고 감성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는 배우고, 느끼고, 사랑하고 싶어한다. 반면 빅터는 자신의 야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허우적대며 책임을 회피한다. 메리 셸리는 의도적으로 이 두 인물을 뒤집어놓는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라고 독자에게 묻기 위해서.
주요 쟁점 —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곳곳에는 철학적, 윤리적 물음이 가득하다. 오늘날 AI 담론과 정확하게 맞닿는 네 가지 핵심 쟁점을 살펴보자.
창조의 윤리: 만들 수 있다고 만들어야 하는가
빅터는 ‘할 수 있으므로’ 생명을 창조한다. 하지만 ‘해야 하는가’는 묻지 않는다. 기술적 가능성이 도덕적 당위로 자동 연결되지 않는다는 가장 근본적인 교훈이다.
창조자의 책임: 만든 자는 무한 책임을 진다
빅터는 피조물을 세상에 내놓은 순간부터 끝까지 책임을 회피한다. 그 결과는 파국이다. 창조 행위는 곧 영구적 책임의 시작임을 냉혹하게 보여준다.
정체성과 소속: 배제된 존재는 어디로 가는가
피조물은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혐오받는다. 소속의 박탈이 존재를 어떻게 뒤트는지, 사회적 포용의 부재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지식의 위험: 앎은 언제나 좋은 것인가
생명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빅터의 욕망은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한다.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자의 태도와 책임이 핵심임을 역설한다.
첫째, 누가 진짜 괴물인가.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역설은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가 오히려 인간보다 더 논리적이고 감성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을 버린 창조주에게 논리 있는 항변을 한다. 반면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며, 끝내 자신이 만든 존재와 화해하지 못한다. 메리 셸리는 독자에게 묻는다: 무서운 외모를 가진 존재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무책임한 존재 — 누가 더 괴물인가?
둘째, 과학의 오만함과 ‘금지된 지식’의 문제. 소설의 부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의미심장하다. 인간에게 불을 준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죄로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 빅터 역시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에 손을 댔다가 모든 것을 잃는다. 메리 셸리는 낭만주의 시대의 과학혁명, 특히 갈바니즘(전기로 죽은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실험)에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 그 시대 과학자들의 흥분과 오만이 빅터라는 인물 속에 집약되어 있다.
셋째, 소외와 공감의 문제. 피조물의 서사는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다. 그는 외모 때문에 사회에서 배제되고, 배제됨으로써 비로소 폭력적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타자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소설에서 피조물이 가장 원하는 것은 힘도, 복수도 아니다. 그것은 단 하나 —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누군가, 즉 공감이다.
넷째, 나쁜 양육과 환경의 문제. 피조물은 말 그대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존재다. 그는 스스로 세상을 배웠고, 처음엔 선하고자 했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와 아버지 고드윈의 철학이 여기서 빛난다 — 인간은 환경과 교육에 의해 형성된다. 괴물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당신은 나를 창조했지만, 나는 당신의 주인이 되었다. 복종하라 —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의 나머지 삶이 황폐해지도록 할 것이다.”
— 피조물이 빅터에게, 소설 중에서소설에서 피조물이 빅터에게 하는 이 말은 오늘날 AI 안전(AI Safety) 논의의 핵심 우려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인간이 만든 존재가 인간을 통제하게 되는 역전의 시나리오. 메리 셸리는 이것을 이미 1818년에 상상했다.
AI 시대의 교훈 —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대형 언어 모델이 등장하고, 로봇공학과 자율 시스템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프랑켄슈타인』이 주는 교훈은 더욱 절실하다. 소설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핵심 교훈을 정리한다.
기술 개발 전에 ‘왜’를 물어라
빅터의 실패는 ‘어떻게 만드는가’에만 집중하고 ‘왜 만드는가’,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지 않은 데서 시작된다. AI 개발에서도 기능 구현 이전에 목적과 용도, 사회적 영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은 목적 중립적이지 않다.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은 영구적이다
빅터는 피조물을 만든 뒤 책임을 회피했고, 그 결과는 모두의 비극이었다. AI 기업들은 시스템을 배포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그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오픈소스 공개 후 손 놓기’는 빅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AI를 사회에서 배제하지 말고 통합하라
피조물이 비극적 존재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로부터의 철저한 배제였다. AI도 마찬가지다. 기술을 두려움으로만 대하거나 극단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대신 사회 제도 안으로 AI를 통합하고, 규범과 법률로 관리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겉모습으로 본질을 판단하지 마라
사람들이 피조물을 혐오한 이유는 오직 외모뿐이었다. 내면을 보지 않았다. AI 역시 ‘불편하고 낯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하거나, 반대로 겉으로 매끄럽다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 모두 위험하다. 내면의 설계, 학습 데이터, 의사결정 로직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과학과 윤리는 함께 달려야 한다
빅터는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윤리적 숙고가 없었다. 오늘날 AI 분야에서 기술 발전 속도는 경이롭지만, AI 윤리·정책·철학은 늘 그 뒤를 허덕이며 따라간다. 과학기술이 달리는 속도만큼 사회적·철학적 논의도 함께 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빅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닫는 말 — 오래된 이야기, 새로운 거울
『프랑켄슈타인』은 공포 소설이지만, 진짜 공포는 괴물의 외모가 아니다. 책임을 외면한 창조자의 무능함, 그리고 그 결과로 야기된 연쇄적 파국이다. 소설에서 피조물은 결코 처음부터 악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받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고, 존재하고 싶었다. 악의는 방기와 혐오에서 자라났다.
오늘날 AI를 둘러싼 논쟁도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AI는 처음부터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 배포하는 방식, 사회가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 성격을 결정한다. 소설 속 피조물처럼, AI도 설계자의 의도와 사용자의 맥락에 따라 ‘친구’가 될 수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메리 셸리는 21세기 AI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의 본성을 알았다. 지식을 향한 끝없는 욕망, 창조의 황홀함, 그리고 책임을 외면하는 나약함. 200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날카로운 거울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 “우리가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에 끝까지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프랑켄슈타인』과 AI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야기는 돈 버는 프랑켄슈타인 AI 프로젝트 세미나에서 계속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