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가복음(4): 씨 뿌리는 마음
호숫가, 그날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에워쌌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군중의 숨결과 웅성거림 속에서 예수는 배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육지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배는 사람들로부터 예수를 조금이나마 떼어놓아 주었다. 그는 익숙한 눈빛으로 군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호수를 가로질러 마치 바람에 실린 씨앗처럼 퍼져 나갔다.
“들어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예수의 목소리는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왔지만,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렸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떨기가 자라 기운을 막았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예수의 이야기는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펼쳐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씨앗이 뿌려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떤 밭과 같을까? 길가, 돌밭, 가시덤불, 아니면 기름진 옥토일까?
이야기를 마친 예수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예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의 말은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울려 나오는 메아리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예수는 그의 곁에 남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들은 예수에게 그 비유의 의미를 물었다. 그들의 눈에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가득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지만,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말은 난해하게 들렸다. 왜 그는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왜 비유를 사용하는 것일까? 제자들의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곧 사탄이 와서 그들의 마음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돌밭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예수는 비유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은 마치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제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다양한 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징했다. 길가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완악한 마음,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는 마음, 가시덤불은 세상의 욕심과 염려로 말씀을 막아 버리는 마음, 그리고 옥토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맺는 마음을 의미했다.
예수는 다시 입을 열어 등불 비유를 이야기했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덮개 아래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등불은 진리를 상징했다. 진리는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 밝혀야 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진리를 깨달았으면 그것을 세상에 널리 전파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또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를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사이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씨앗은 자라는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성장하고 발전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믿음과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예수는 겨자씨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놀라운 성장력을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이는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은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겨자씨는 매우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한다. 하나님의 나라도 처음에는 미약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온 세상을 덮을 만큼 크게 성장할 것이다.
그날 저녁,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그들은 배에 올랐다.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 파도가 배에 부딪혀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 예수는 뱃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는 깨어나 바람을 꾸짖고 바다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말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예수의 능력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연을 다스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의 권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예수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들은 아직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믿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았다.
호숫가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갔다. 예수는 씨앗을 뿌리는 마음, 등불처럼 밝혀야 할 진리, 자라나는 씨앗처럼 성장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잠재우는 권능을 통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했다. 예수의 가르침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씨앗이 될 것이었다.